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왕하8:11)
엘리사가 아람 사람 하사엘에게 곧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당시에도 엘리사는 아람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심지어, 현재 아람의 왕조차 조언을 구하고자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낸 상황입니다.
매우 용한(?) 사람이 찾아와서, "당신은 곧 대통령이 될 꺼에요"라고 한다면 정말 놀라 자빠질만한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될 하사엘을 보면서 엘리사는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웁니다.
하사엘이 죽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 대한 연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받게 될 고통 때문도 아닙니다.
엘리사가 정확하게, 뚫어지게 바라본 것은 '하사엘의 얼굴'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서 기뻐하며 그 힘과 지위를 마음대로 사용할 그 사람.
하나님의 자녀들을 박해하고 억압할 그 사람.
마치 이삭을 괴롭힌 이스마엘처럼, 야곱을 괴롭힌 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바로처럼,
그리스도인 아내를 못마땅해하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며, 핍박하는 어느 남편처럼,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에 왕노릇하며 살아갈 그 사람.
그런데 이렇게 왕노릇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 부딪히게 되는 벽이 있습니다.
하사엘이 왕이되려고 죽인 벤하닷처럼, 결국 마지막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닥칩니다.
예외없이 어느날 갑자기 죽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11:33-35)
예수님이 바라보시며 우셨던 사람들은 정확히 마리아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고 우시지 않았지요.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옆에 찾아 온 것도 모르고 죽음 앞에서 원망하고 절망하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우셨고,
엘리사는, 왕이 되어 기뻐 할 하사엘을 보며 울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울고, 언제 웃으며 살고 있나요?
우리는 세상에서 받는 박해 때문에 절망하고 울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사로처럼 언제가는 죽을 죽음 때문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이고 생명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시선, 엘리사의 시선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 삶에 왕이되어 자신이 바라는 일이 형통하면 웃고,
고난과 죽음 앞에는 웁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세상과 함께 웃고 함께 우는게 당연해져버린 이 시대에,
그들을 눈물로 쏘아보아주는 엘리사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엘토토 성도들을 이 말씀을 함께 받으며,
예수님의 눈물로 우리 주변의 하사엘들이 부끄러워 할 때까지 바라보며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옳지 않음을 깨달을 때까지, 마음에 찔림이 있을 때까지, 예수님의 눈물을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사엘은 끝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언젠가는 결국 바울사도처럼 돌아올 것을 믿으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