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과부, 고아, 나그네처럼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남편이 있다고 말은 하는데 옆에는 없습니다.
분명히 아빠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보이지가 않습니다.
분명히 집이 있다고 우기는데, 이 땅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이지요.
뼛속까지 죄인인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수많은 것들을 남편 삼으려고 합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존재.
옆에 있기만 하면 힘이 되고 든든한 존재.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러운 존재.
항상 내 편인 존재.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내 경력이기도 하고, 내가 일군 비지니스이기도 합니다.
매일 피 땀흘려 만든 멋진 몸매이기도 하고, 온갖 노력으로 빚어낸 투명한 피부와 외모이기도 합니다.
내가 정성껏 모아 소장하는 수집품이기도 하고, 애지중지 키우는 애완 동물이기도 합니다.
고민고민하며 신중하게 투자한 주식이기도 하고, 내가 깔고 앉아있는 집과 땅이기도 합니다.
내가 깔고 앉을 땅도, 의지할만한 사람도, 홀로 설만한 건강도, 떳떳하게 살아갈 신분도 없는 과부들이 또다시 예수님 앞에 모였습니다.
엘토토 탄자니안 예배의 성도들입니다.
그 누구보다 내 코가 석자인 과부들이지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도, 법적인 자격도, 건강도 하나 없이 오직 은혜로 연명하는 과부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헌금을 드렸습니다.
지난주에 모였을 때, 가장 힘든 이 시기에 오히려 이웃을 위해 헌금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탄자니안 예배의 첫 헌금의 시간.
불법체류 외국인이 모이면 위험할 수 도 있는 이때에,
돈 벌기가 더 어려워진 이 시국에,
한푼이라도 나와 가족을 위해 더 모아놓아도 불안한 때에,
오히려 더 힘든 이웃을 생각하며 과부들이 두렙돈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남편인 우리들.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사는 우리들.
남편이 준 사랑이, 남편이 주는 양식이 너무나도 충분해서 기꺼이 내 것을 나눠줄 수 있는 우리들.
우리도 탄자니안 지체들처럼,
남편 오실 날을 고대하면서 오늘의 아픔을 기꺼이 견뎌내고,
내가 가진 전부를 툴툴 털어 이웃에게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함으로 오늘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그 남편은, 온 만물의 왕이시니까요.
자라지 못한 다리도, 없는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눈도 새로운 몸으로 바꿔주실 창조주시니까요.
단 한분도 빠짐없이 헌금을 하시는 탄자니안 지체들을 보며 어찌나 눈물나게 도전 되고 감동이 됨과 동시에, 어느새 인색해져버린 제 자신이 부끄럽던지요.
'오늘'이라는 기회를 또 주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고, 아낌없이 기꺼이 주께 드리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정말로 남편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과부답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