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3:5-6)


요단강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시꺼먼 죄악들을 풀어놓았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실제로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몰랐지요.

이제 우리는 압니다.

나도 요단강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모여든 민족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나도 요단강에 새까만 죄악을 쏟아놓은 죄인이라는 사실을요.

나도 참된 왕을 떠나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왕노릇 했던 자라는 것을요.

나도 유일하게 옳으신 하나님을 떠나서, 내 힘으로 무화과 잎 옷을 만들어 입으며 나의 옳음(자기 의)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자유하기는 커녕, 죄와 죽음과 사탄의 노예로 살았지요.

돈에 매이고, 사람에게 매이고, 환경에 매여서, 삶의 무게에 버거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은 옳은 길이 아니었으며,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불의 할 뿐이었습니다.

부모 간섭없이 내 맘대로 살고 싶다고 집을 잘나가던 아이가 결국 부모를 떠나서 세상에서도 잘나가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흉흉한 세상에 굴복하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자녀의 모습은 부모의 눈에 결코 옳아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요단강으로 부름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십자가 앞에 모인자들은 자신의 죄를 보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 서면 내 죄는 하나님이 죽어야만 해결되는 죄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요단강은 우리가 쏟아놓은 무한한 죄악들로 시꺼멓게 변했습니다.

그곳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이 들어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어두운 요단강 속에, 시커먼 내 안에 새 하얀 하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불의하고 더러운 나의 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신 죄 없으신 예수님.

나의 악취나는 거무죽죽한 죄악들을 똥물처럼 뒤집어쓰시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온 예수님을 향해서 세례요한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내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녀의 모습이 되어 그분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교제할 수 있고, 영원히 동행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마3:14-15)


이번 엘토토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세례'에 담긴 깊은 의미들을 배웠습니다.

케냐 전역에 퍼져있는 엘토토 교회와 학교의 목회자들과 선생님들은, 세례에 대한 같은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성도들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세례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


깨끗하게 샤워하고 나온 뒤에 다시 몸을 더럽히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세례 받은 자라면, 이전과 달라야 정상입니다.


오늘도, 나 같이 불의한 자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만드시기 위해 이 땅까지 오셔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또 기억합시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해 그분의 명령 또한 소중하게 지켜갑시다.

혹시 평신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세례식을 주관할 기회가 없을지라도,

성경을 통해 세례에 담긴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복음의 진리를 깊이 공부하고, 가르치고, 전해줍시다. 우리의 삶으로 '세례 받은 자'의 모습을 이 세상에 보여주는 엘토토, 그리고 팀 지저스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