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시5:4)
우리는 죄를 지어도 인간인 이상, 죄성이 내 안에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라고 가볍게(?) 넘길 때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하도 은혜, 은혜만을 노래하다보니 오늘 내가 짓는 죄에 대한 무게까지 가벼워져버린 건 아닌가 우려됩니다.
다윗은 시편 5편에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인의 특성에 대해 다섯가지를 말합니다.
그중에 첫번째가 오만함입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늘 내가 보스가 되고 싶어하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자꾸 '내 말 좀 들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누가 자기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하지요.
이러한 교만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러 이 땅까지 찾아오신 예수님까지 죽여버릴 정도로 무섭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성경책을 닫고 살고, 듣기 싫은 설교 때문에 교회를 옮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을 찾아가지요.
"하라, 하지마라"가 아니라, "아버지가 다 해주실 것입니다. 더 주시기 원하십니다"라는 달콤한 말들을 들으면 이 힘든 세상 속에서 참 위로가 되는 좋은 설교를 들었다고 '은혜받았다'며 좋아합니다.
우리의 무서운 교만은 하나님이 왕 대접을 받으시기 보다,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섬기는 나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와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태도,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아는 태도,
티끌이 창조주를 무시하는 태도,
아버지 집에서 내 유산 내놓으라는 태도,
성전에서 강도질 하는 태도,
태초에 하와가 죄를 지을 때부터 드러냈던 태도입니다.
다 주었는데,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고 왕좌까지 내놓으라는 태도.
이 무서운 교만에 의해 그녀는 하나님 말씀도 무시하고, 아담에게도 자기 말을 들으라고 했지요.
선악과 먹어도 안죽는다고요.
하나님이 틀렸다고요.
오만한 자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하와가, 탕자가 결국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것처럼요.
이런 우리의 교만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살리시기 위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5:21)
부부간에, 자녀와 부모, 상전과 종,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관계속에서 그 관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경험하고, 알 수 있게 됩니다.
나 같은 부족한 자도 낮아지고, 복종하며, 섬기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데,
온 우주 만물의 왕이요 창조주께서 복종하시고 섬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내가 뭐라고 내 옆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조차 못 섬기고 이렇게 내 말을 안듣는다고 성내고 미워하고 있는지요.
엘토토 형제 자매들과 함께 금요기도회를 하면서, 말씀에 비추어 우리들의 죄악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하와와 다를 바 없는 우리, 교만하기 짝이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은혜를 묵상하며 함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시5:12)"
예수님이 방패처럼 은혜로 우리를 감싸주고 계신다네요.
앙칼지게 교만한 내가 끊임없이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리려고 지금도 피투성이가 되어 나를 꼭 껴안고 계신 남편을 바라봅시다.
오늘도 예수님의 사랑을 입고 있다면,
그분의 한없는 겸손에 마음이 무너졌다면,
이제 더이상 타락한 여인이 아닌, 주의 순결한 신부로써 오늘도 내 죄와 싸우며 살아봅시다.
끝으로 엘토토 식구들과 함께 이 구절을 읽으며, 주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날마다 이 고백을 드리며 살아보겠노라 결단했습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5:7)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