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자녀를 그 안식안에 넣어주시지요.
바로, 하나님 안에 거하면 반드시 누리게 되는 '기쁨(에덴)' 안으로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알면 알 수록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바리?" 스와힐리어로 안녕을 묻는 인삿말입니다.
전세계의 공통 인삿말이 바로, 서로의 평안을 묻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평안이 없으면 행복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는 날동안 평안을 목말라하고, 찾고, 갈구하다 결국 죽습니다.
평생동안 사랑 받기 위해, 사랑 하기 위해 수고하고,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고자 수고하며,
나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죽을 때까지 수고합니다.
그리고나서 죽을 때도 평안을 빕니다. "Rest In Peace." (평화 속에 안식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창5:29)
6일동안,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은 우리가 피 땀흘려 노동을 하고 수고를 해야만 아주 잠깐 견딜만한 기쁨, 보람, 성취를 얻을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진짜 기쁨도 아니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뒹구는 나뭇가지로서 죽어가는 상태임을 아셨습니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7-8)
하나님은 노아를 '의인', '당대에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평가해주십니다. (창6:8)
이와 비슷한 평을 해주신 사람이 또 있지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을 대표하는 '동방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던 욥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1:1)
욥이 정말로 흠이 없던가요? 불평 한번 안하던가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자', '내 마음에 합한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의 죄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흠 많고', '거짓투성이'이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쫓는 자'들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이렇게 평화 없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이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우리 삶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죽어도 안식할 수 없기에,
우리의 피땀으로는 결코 평안을 누릴 수 없기에,
의로우신 하나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22:4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
그렇게 내 죄로 인한 저주를 떠안고, 내 대신 피 땀을 흘려주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이제 더이상 내가 평안과 구원을 얻기 위해 피땀을 흘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안식으로, 에덴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아는 성도들만, 인간의 피와 땀냄새로 가득한 어두운 세상 속에서 안식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해 놓으신 일곱째 날,
6일동안 죄와 사망의 그늘 속에 고생하는 당신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대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아프고, 힘든 일들 속에서도 우리 엘토토 성도들은 예수님 손 꼭 붙잡고 교회에 와서 참된 안식을 누렸습니다. 그 어려움 때문에 안식일의 주인을 더 꼭 붙잡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함께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안에 있게 해주셔서 그저 감사하다고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고통스러운 그 상황 속에서도 힘써 '부활의 복음'을 묵상하시며 '하나님 주신 안식'에 들어가시는 오늘이 되길 축복합니다.
※최근 케냐에 여러가지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데모 소식이 많습니다.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당당히 참된 안식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 수 있도록 중보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