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수많은 종교들도 '좁은 문'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신을 감동시키고, 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고 '금욕과 고행'을 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을 우리가 걸어야만 하는 '고난의 길'로 해석하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100일 작정 기도', '21일 다니엘 기도', '작정 헌금', '40일, 10일, 3일 금식', '일년 헌신', '단기 선교' 등을 하는 것을 좁은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좁은 길을 선택하고 고생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나요?

내가 고난을 당하는 선택을 하면 하나님이 선물을 주시나요?

게다가, 특별한 좁은 길(?)은 선교사들 같은 특별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만 걸을 수 있는 길인가요?


우리가 아는 진리는, 우리가 고행을 선택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가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게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적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찾는 자'라는 그리스어는(εὑρίσκω휴리스코) 발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find, discover)

하나님이 닫아버리신 에덴의 문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들만 아버지께로 돌아와 발견하게 되는 문입니다.

이것은 택함받은 자들이 '엘리트'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천주교 모두 '구원의 문'을 이야기 하지만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7)


양들만 통과 할 수 있는 문이 양의 문입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의 목소리를 따라서 '양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소수의 예수님의 양이라는 진실을 알게된다면, 과연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내가 전세계에서 소수만 들어가는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내가 세계적인 그룹인 엔디비아나, 구글, 테슬라같은 회사에 특채로 취업이 되었다면,

내가 나라를 위해서 정부에서 일할 수 있는 소수 정예로 뽑혔다면,

까무러칠 만한 기쁜 소식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일 것입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는 자는 누굴까요? 좁은 문을 선택하는 자는 누굴까요?

하나님께 조금더 큰 집과 차를 얻어내려는 자들일까요?

하나님께 멋지고 아름다운 배우자를 받아내려는 자들일까요?


진정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자신이 먼저 협착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서, 자기 몸을 찢고 그 사이로 나를 통과시키며, 자신의 피를 발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게 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들입니다.


좁은 문에 들어가면 협착한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받고 고난 당하는 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음성이 어마어마한 특권과 영광으로 들리는 자들입니다.


그 구원받는 소수에 뽑혔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뻐 어깨에 뽕이 들어가서 기꺼이, 즐거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착한 길들을 선택하는 자들입니다.


왕의 명령을 따라 기꺼이 이전에 내가 추구하던 삶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진리를 따라 세상의 거짓들을 뒤집으며,

남들 모두가 가는 대세의 흐름을 역류해서, 그 반대의 길을 영광스럽게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엘토토 식구들은 오늘도 모여서, 나를 위한 문, 나를 위한 길이 아닌,

오직 주를 위한 좁은 문과 좁은 길을 선택하며 매일 즐거이 걸어가기로 다짐하며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