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빼고는 아름다운 것을 단 한군데도 찾을 수 없는 곳,
고로고초 덤핑사이트
쓰레기보다도 쓸모없는 것이 '티끌과 재'입니다.
아브라함도, 욥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과 재라고 묘사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더러운 죄인들은 자신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끌과 재들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앞에 떳떳하게 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나름대로 힘써 착하게 살고, 일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하고, 예배에 성실히 참석하고, 두세시간씩 기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까지 살지 않는 남들보다는 의롭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의'라는 말은 '옳다'라는 말입니다.
'깨끗하다, 법적으로 죄없다, 흠없다'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티끌과 재위에 무엇을 덮든지, 칠하든지 결국 더러워질 뿐입니다.
케냐의 먼지 가득한 땅위를 다니면 아침에 깨끗했던 옷이 저녁되면 항상 더러워 지는 것 처럼요.
덤핑사이트에서 일하신는 분들은 모두 정말 열심히 일하십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요.
그들의 눈에는 일을 쉬고 하늘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우리가 참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배부른 자들의 놀이쯤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눈에 옳은 것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역한 냄새와 먼지를 견디며 하루종일 일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그 피 땀에 대한 댓가일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 성실, 부지런함, 정직, 최선과 같은 옷들을 입고 삽니다.
이처럼 '자신의 옳음'이 열정적으로 이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 엘토토 청년들이 복음을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는 부정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아서 잎사귀 같이 시들고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사64:6)
"우리에게 소망이 없기에, 우리를 구원하러 '하나님의 의'가 오셨습니다."
"그가 자신의 옷을 벗어 우리에게 입혀주시고, 자신은 피흘려 우리 대신 죽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6-17)
의인은 내 노력이 0.0000001%도 아닌 오직 100%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았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100%의 감사'를 예수님께만 드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땅만 바라보며 내 눈에 옳은 것들을 손에 쥐고 뿌듯해 하는 사람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으냐고요?
오직 하나님만 옳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인 '십자가'만 옳습니다.
우리부터 고개 들어 날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의를 바라봅시다.
잠시 일을 멈추고 함께 예배드리는 소수의 덤핑사이트 마마들처럼,
이 세상이라는 덤핑사이트 위에서 꼿꼿이 허리를 펴고 하늘 바라보며
우리를 '하나님의 눈에 옳게' 해주신 예수님께 온전히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또하루 되길 축복합니다.










